친구와 모텔에서 잠들 수가 없었어.
백수들은 원래 아침 해가 떠오르면 그 때 잠들거든.
서로 뜬 눈으로 밤새다가
결국 태국여행했던 얘기나 하면서
아침6시까지 시간을 때웠어.
그리고 7시까지 가기로 한 그 공사현장으로
택시타고 갔지.
드디어 도착!
이 일대가 천안 공사현장이어서
어디로 들어가야하는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어.
캐리어 끌고 돌아다니다가 이 입간판
튀어나온 모서리에
정강이를 찍혔어.
아니, 길 한복판에다가
세웠으면 인도 쪽 말고 도로 쪽에 세워놓던가...
차 옆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는 여기 모서리에 찍혀버림.
일 시작도 하기 전에 피봤어.
저 쇠 파이프 모서리에 찍혔는데,
파상풍 걱정돼서 일단 사진 찍어놈.
나중에 다리 썩어들어가면
꼭 소송걸어야지.
우리는 관계자와 통화하고
일단 공사현장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들어갔어.
여기가 공사현장이야.
밖에서 보는데, 무거운거 나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우리도 필시 저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몸이 움추려들더라.
공포영화에 많이 나오는 저 엘리베이터도 타게 되겠지.
고소공포증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함.
우리는 안 쪽 배관 관리팀 사무실를 찾았어.
사무실이라 할 것도 없이 작은 컨테이너였는데,
거기엔 지휘소장과 배관반장이 있었어.
그들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물어봤어.
이 일은 해봤냐,
어디서 왔냐, 나이는 어떻게 돼냐
내 친구는 이런 쪽 일에 베테랑이어서
이 일에 관련된 고급단어를 막 말하더라고.
"무슨 일 하다 왔어요?"
"조선소에 있다 왔습니다"
"뭐 해봤어요"
"용접 해봤습니다"
"오? 그럼 아크 할 줄 알겠네?"
"아크는 할 줄 모르고,
쇼트만 좀 할 줄 압니다"
이게 뭔 소리들이야.
나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지.
"이 쪽 친구도 같이 조선소에 있다 온거요?"
"네 둘이 같이 있다가 왔습니다"
졸지에 뭔가 해버린 경력자가 되어버렸어.
물론, 저렇게 말하는 게
통상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실제로는 대화 도중에
기싸움이 엄청났어.
반장이란 놈이
이 일 해본 적 없으니 10만원에 하자는
말도 안되는 소릴했기 때문에.
우리는 11만원 듣고 온건데...
친구는 그 때부터 열받아하는게 보였어.
"아니, 저희 분명히 올 때, 11만원 듣고 왔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반장은 한 두달 일하다가 안하는 사람도 많으니
10에 하자고 쌩떼를 썼어.
어제 저녁에 바람맞아서
모텔비 나간 것도 억울한데...
일단은 화제를 돌려
다른 질문을 했어.
"잔업은 많은 편입니까?"
"잔업 거의 없어~"
친구의 말에 따르면 잔업에 따라
350~400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잔업시 추가로 1.5배 더 받을 수 있으니까.
가뜩이나, 기본 하루일당도 11만원에서 10만원으로
깍으려고 하고 있는데,
돈을 더 벌 기회조차 없다고 생각하니
암담했어.
친구는 조용히 내 허벅지를 툭툭 치며
신호를 보냈어.
'여기 아니다, 다른 데 가자'
나는 그 즉시 이해했고,
베테랑인 친구 말을 따르기로 했어.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여기와서 이 사람들의
갑질노름에 너무 고생했으니
밥이라도 먹고 좀 쉬다가 가고 싶었어.
"반장님, 그럼 저희 일단 하더라도,
내일부터 할게요.
저희 밤새고 와서 오늘부터 일하면 다쳐요.
오늘은 밥 먹고, 숙소에서 좀 쉬고 싶어요"
"오?! 그래그래! 밥 먹어야지! 따라와!"
반장은 자기의 의도대로
모든 상황이 끝난 게 기뻐보였어.
우리는 공사장과 계약을 맺은
근처식당으로 가서
이모님들에게 밥을 달라고해서
분노의 아침밥을 꾸역꾸역 먹었지.
"J야(내 이름), 이거 아니다.
내가 다른 일 찾아볼게.
여기서 하지말자."
"그러자, 저 사람들 말이 자꾸 바뀐다.
저런 사람들 밑에서 일하면
나중에 그만 둘 때도, 돈 안쳐주고
최저시급으로 줄 것 같아.
근데, 우리 잠 못 잤으니까
숙소 구경할 겸 가서 좀 자다가 가자"
우리는 밥을 다먹고, 다시 한번 반장을 만났어.
"진짜 잔업 거의 없습니까?"
"아~ 아까는 거짓말 한거야~
잔업 많아!
근데 젊은이들이 돈 따라가면 안돼!
그라믄 못 써!"
'이게 뭔 개소리지??
야 임마 그럼 너는 돈 안 받고
공짜로 일하라고 하면 할 거냐?'
어이없지만,
겉으로는 '예예 맞습니다' 하면서
숙소로 안내 받았어.
숙소까지는 차를 타고 5분 정도 거리였지만,
걸어가기엔 먼 거리였어.
숙소에 도착해보니
역시 처음 약속과 달랐어.
우리가 올 때는
'오피스텔 하나 얻어서
둘이 잘 수 있게 해줄게'라고
말했는데, 가보니까 투 룸에
5명이서 합숙하는 형태더라..
여기는 뭐 구라 아닌게 없어.
이런거 예상은 했지만,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해주지.
기대만 엄청 높히고
까보니까 다 구라야.
집은 엄청 더러웠고,
정리도 하나 안되있어.
쓰레기는 여기저기
널부러져있고...
그리고 여기서 생활하면 돈 모으는 게 아니라
여기서 묶는 사람들이랑 밤마다
술 파티 벌일 것 같아.
소주병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더라...
그리고, 어딜 가나 페트병에 구름과자가 가득...
5명이서 동시에 구름과자 먹으면
폐 병 걸리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6시간 정도 숙면을 취했고,
그 사람들이 복귀하기 전에
이 곳을 떠났어.
반장에게는 전화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조건이 안맞아서 못 일하겠다'고 말하고
우리는 터미널로 향했지.
터미널로 가는 길에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어서 찍어봤어.
알고보니 이 근처가
KTX 천안아산역 옆이더라고.
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 시간 기다리면서
던킨도너츠 갔어.
커피랑 도넛 합해서 2천원
이거 먹으면서
눈물 흘렸어.
와서 돈 벌었기다보단, 돈 더 썼기 때문에
ㅠ_ㅠ
저녁+모텔+택시+시외버스왕복+커피값
힝...
어서어서 돈 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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