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가 이천 하이닉스에서의
노가다 일정이 마무리 되었어.
그 간 어떻게 살았는지 상황보고를
시작하도록 함.
일요일에도 일 나오라고 하던데
도저히 때려죽여도 못 할 것 같아서
안 나간다고 했어.
노가다 일로 돈 벌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런 일 원 투데이 할 것도 아니고
일요일까지 일해버리면
그 주의 텐션이 망가져버려.
그래서 일요일은 오랜 만에 서울로 나가서
음악활동을 하기로 했지!
이번 밴드모임에
보컬 형의 중국여자친구인
티나도 온다고 그래서 만났을 때 주기로 했던
태국카레를 구하기 위해
숙소 앞 외국인 전용 마트에 들렀어.
태국물품 짱짱 많음.
그 중에서 내가 산 건!
태국카레!!
레드커리랑 그린커리를 샀어.
레드커리는 딱 봐도 줏나 매워보이지?
드셔보셈들, 응꼬 불남.
그린커리는 한국인의 경우 잘 먹는 사람은 잘 먹어.
비주얼이 텔레토비에 나오는 꿀꿀이죽 같지만
그래도 먹을 만 해.
카운터에 있는 아줌마는 외모가 한국 사람같아서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되게 익숙한 억양으로 말하는 거야.
알고봤더니 태국사람이었어.
계산 할 때 태국 사람들에게 태국말로 계산해서
나 역시도 태국말로 계산 해줄 줄 알고
태국어 오랜 만에 쓰는 건가 싶어서
가슴 설렜는데 정작 나한테는 한국말로 해주심.
나도 태국어 쓰고 싶었는데. 힝...
어쨌거나, 커리 두 개를 봉지에 담아
딸랑딸랑 들고 동서울로 향했지.
그리고 약속 시간에 맞춰 밴드를 갔어.
오늘의 연습 장소는 강변역 근처 지하실에
위치한 합주실이야.
겉보기엔 허름에 보여도 들어가니까
나름 깔끔하게 잘 되어있더라고?
악기를 하나 둘 세팅하고
우리만의 자작곡을 치기 시작했지.
우리 앨범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아니... 공연은 언제 하는 걸까?
다들 취업준비로 바쁘고
일하느라 시간 안 맞고...ㅠㅠ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연습을 마치고 우리는 강변역 포장마차를 가기로 했어.
위치는 테크노 마트 옆에 있는 4번 포차!
태국여행기 초창기에 동생녀석과
만나서 술 한 잔 했던 그 장소야.
여기 제육볶음이 갈비맛이 나서 참 좋아.
하지만, 다이어트 기간이라 돈만 내고
안주 딱 한 입먹음...
그 대신 술은 엄청 먹었어.
나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반 병이 내 주량인데
이 날은 날도 춥고 마음도 편하니까
술이 잘 들어가더라고?
혼자 한 병 반 먹은 것 같아.
하지만, 앞을 보니 보컬 형은
씁쓸한 표정으로 묵묵히 소주를 삼키고 있더라고?
무슨 일인지 물어봤는데
요즘 취업준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
아까부터 표정이 안 좋았던 이유가
1차 서류합격했던 기업에서 2차에서 떨어졌다는
문자를 받아서 그런거였더라고 하고...
나도 짧게나마 3주 정도 취업준비해봤는데
정말 돌아버릴 뻔 해서
그 마음 잘 알지.
붙었다고 생각한 방콕 아고다에서 최종탈락하고
신라호텔에서 최종탈락하고...
그 때가 내 인생의 암흑기였어.
그래서 보컬 형한테 심심한 위로를 해줬지.
"형, 괜찮아. 형도 이 일 시작하자.
웰컴 투 노가다 월드!!!"
티나도 옆에서 듣다가
한 마디 거들었어.
"그래 해라 쉬먀!
너도 J 하는 거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쉬먀!"
그러자 보컬 형은 소주를 한 잔 삼키더니
한 마디 했어.
"J야, 그건 진짜 아직 아니야.
내 인생이 나락이다 싶을 때 시작할게."
이 형 전국 5천만 노가다인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다니!!
물론, 나 역시 친구따라 이 일을 들어갔을 때
모든 걸 포기한 상태로
입대한다고 생각하며 들어갔지만...
티나는 12월 중에 방콕에 간다고 하는데
실롬이란 지역에 있는 콘도를
하나 구매한다고 하더라.
역시 돈은 대륙여자!
콘도사서 뭐 할거냐고 물어보니
콘도사업한다고 하더라.
이렇게 내 경쟁자가 한 명 더 생기는 건가?!
그렇게 울며 웃으며 소주를 마시고
밖에 나와 걸어보니 역시 취했다....
이 날 내가 특히 기분이 좋았던지
헤어지기 전에 내가 편의점 쏜다고
사고싶은 거 다 사라고 했던 망발이 기억나네...
밴드원들이 다들 착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얼마나 깨졌을지 상상하면
아직도 손발이 떨려옴...
방콕에서 만났던 Z형이
편의점 찬스 쓰라고 했을 때
4명이 편의점 식료품부터 생필품까지 맘 껏 사서
15만원 가까이 나왔던게 기억이 나네.
앞으로 술 먹으면 조심해야지...
위험위험!
술에 취해 겨우 이천으로 가는 버스를 타서
비틀거리며 숙소까지 갔어.
그리고 월요일에 아무 탈 없이 일을 마쳤지.
그리고 마지막 날인 화요일!
이 날은 관리자의 짜증이
극에 달한 날이었어.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사업장에 있는 모든 재료와
공구들을 전부 반출시켜야했는데
근무가 종료되기 전 마지막 두 시간이 남았을 때
관리자는 아오지탄광의 간수처럼
소리를 지르며 발씨발씨를 외쳐대며
서두르라고 했지.
우리는 마치 노예가 된 기분이었고
10명의 노동자 중 7명이 못해먹겠다고 말하며
단체로 도망갔어.
1시간 반만 버티면 6만원이라는 추가노동비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나와 내 친구, 그리고 한 명의 아저씨
달랑 3만 남았고
관리자는 화풀이를 우리 셋에게 하며
더욱 더 빨리 일하라고 채찍질했어.
끝나기 10분 전 쯤에는
관리자의 꼬장이 최고조에 달해서
나도 하마터면 헬멧 집어던지고 갈 뻔 했지만
영혼을 팔아 10분만 견디면
6만원이 추가로 더 들어오기 때문에
연장근무 확인서에 싸인을 하기 전까지는
꾹꾹 참았지.
아무리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나도 10분에 6만원은
포기 못하겠더라.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던 막판 10분은
그래도 끝나게 되었고
나와 내 친구는 이천에서의 마지막 노동을
좋게 마무리 할 수 있었어.
안녕 하이닉스.
언젠가 또 보겠지?
넌 좋은 추억이었어.
하이닉스를 그윽하게 쳐다보고
친구와 나는 마지막 식사를 하러 갔지.
그 동안 한 끼를 안 먹으면서 모아놨던
식권을 모아모아서 그 식당에서 파는
최고의 값 비싼 메뉴!
오리고기를 먹기로 했지!!!!
가격은 훈제오리 37,000원
오리주물럭 40,000원!
우리는 식권을 15장 냈어.
오리고기의 자태를 보니
그 동안 저녁을 안 먹고 굶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건 그냥 평범한 밥 메뉴로 나온
감자탕! 이것도 퍼와서 먹었지!
식권을 옆 식당에서도 사용 할 수 있다고해서
옆에 위치한 김밥천국에 가서
냉면도 시켜서 옴.
훈제오리와 오리 주물럭은 엄청났어.
이런게 순간순간의 행복 아니겠어?
야무지게 오리기름에 밥까지 볶아먹고서야
우리는 만족 할 수 있었지.
야무지게 다 먹음.
물론, 다른 곳에서 8만원주고
이 정도 오리고기 사먹을거냐고 하면
때려죽여도 안 먹을 거지만
공짜로 먹었으니 나름 만족.
이렇게 이천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와서 블로그를 쓰려고 했으나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잠들었어.
그리고 다음 날인 오늘
새벽 6시에 일어나 큰 배낭가방을 메고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스쿠터를 타고
의정부로 돌아왔지.
가는 길에 찍은 팔당호.
안개가 자욱자욱하다.
중간에 내려서 사진 찍으려고
잠깐 세우려다 황천길 갈 뻔함.
집에 돌아오니 나 없던 동안에
어머니가 생각이상으로 아프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는데 그래도 지금은
많이 호전되셨다고 하니 다행이다.
욜로를 외치며 나 혼자 잘 사는 인생을 꿈꿨지만
갈 수록 늙어가는 부모님을
못 본 척 할 수가 없다.
쫌만 쉬고 일 다시 들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