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너 말 다했어?"
아... 말이 좀 심했나?
하지만, 어중간하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T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나도 사과하지 않을 심산이었어.
"이건 니 여행이고, 나 보러 왔다는 건
안 믿어. 니가 나를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그런 행동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20여분간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어.
고개를 돌려보니
T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는 것 같아서
별로 안쓰럽진 않았어.
그래도 맘이 모질지가 못해서
얘가 태국으로 가기 전까지는
안전하게 돌봐줘야한다는 생각도 있었어.
하지만, 내가 먼저 사과하긴 싫고,
무슨 좋은 방도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옆 쪽에 인형뽑기가 있어서
이거다 싶어 질질 짜는 T
내버려두고 갔더니
예상대로
또 뒤에 쫄래쫄래
따라오는거야.
인형뽑기하고 있는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말을 걸더라고
"이거 사과의 의미로 나 뽑아주는거야?"
"뭔 헛소리?
이러고 있는 시간 아까워서
재미삼아 하는건데?"
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T도 이걸 뽑는다면 자기를 준다는 것을 알 터,
억지로 쥐어짜던 눈물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었어.
이 때부터 T의 기분이 살짝 풀렸는지
몰래 사진 찍었더라고
이왕 뽑는거 내가 좋아하는
가오나시 인형 뽑으려고 노력함.
운 좋게 3000원만에 뽑게 되었는데,
옆에서 T가
'가지고 싶지만
관심없는 척 할거야'
라는 얼굴로 흘깃흘깃 보더라고
그래서 인형을 건네주면서 한 마디했어.
"내가 말 심하게 했다면 미안.
근데, 너 이기적였던 건 알아둬.
그리고 너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한다면
너 태국으로 돌아간 이후로
난 널 더이상 만나지 않을거야.
잘 알아둬"
듣는 둥 마는 둥
일단은 기분이 풀렸는지
인형 사진부터 찍더라고.
인형 받은 이후로 자꾸
기분 풀라고 찝쩍거리는데
결국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안 난 것도 아닌
중간 기분이 되어버렸어.
한 바탕 사건을 치루고나니까
급 피곤해짐.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핑크 빛 데이트를 하러 갔지.
말 그대로 핑크...
헬로키티 카페인데,
여기는 입구서부터 출구까지
모든게 다 핑크야.
입구까지는 괜찮았어.
아기자기하고, 색감도 예쁜게
동화 속에 들어온 기분도 들었어.
근데, 건물 안 쪽까지 다 핑크
올 핑크!!!
핑크지옥이야!!!
눈을 돌릴 때마다
모든 게 다 핑크니까
나중엔 토할 것 같았어.
키티 대가리가 하얀 색이었던게
진짜 고마울 정도였어.
주인이 진짜
정신병 수준으로
핑크도배를 해놨으니까
핑크 좋아하는 사람은 꼭 가봐.
이렇게 생긴 의자도 있었어.
한 바퀴 휙 돌아보다가
핑크 때문에
속이 너무 울렁거려서
여기서 커피 마시면 토할 것 같아서
후다닥 나왔어.
여기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착란 일으킬 것 같아.
그래서 그냥 사진만 찍고나옴.
키티 기프트 샵인데,
가격은 역시 창렬.
메이커 값이 80%겠지?
그 이후로 밥 먹으러 갔어.
음식 기다리는 T
T가 엄청 먹고 싶다고 해서
온 음식점은...
연어횟집이었어.
나도 연어를 참 좋아하는데,
핑크지옥을 보고왔던 터라
핑크색 연어도 토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무한리필임에도 불구하고
한 접시밖에 먹지 못했어..
인당 17,000원인데....
돈 아까웠어...
여기 이름은 육회한 연어인데,
연어 뿐만 아니라 육회도 팔아.
연어 맛은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 맛임.
센스있게 주먹밥도 나옴.
연어초밥도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리코타 치즈 샐러드도
나옴.
리코타 치즈 샐러드랑
같이 싸먹으면
나쁘지 않음.
연어를 다먹고
우리의 원래 계획은
홍대클럽에 가는 거였는데,
먹고나니 노곤노곤해서
당장 못 가겠더라고.
그래서 T한테
클럽 가기 전에
좀 쉬었다가 가자고 했어.
T도 오늘 있었던 싸움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도 지쳤는지 몰라도
수긍을 했어.
그래서 우선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고
클럽가기로 했어.
맥주 집을 자기가 알아봤는지
물 구름과자인 시샤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더라고.
'얘는 뭐지?
나보다 홍대를 더 잘아네..'
태국에는 시샤가 있는 클럽과
술집이 많은데,
한국에도 있는지는 몰랐어.
우리는 거기로 들어갔고,
시샤와 맥주를 시켰지.
시샤는 숯을 이용해서 과일향을 첨가한
필터로 피우는 구름과자기 때문에
구름과자 안 먹는 사람들도
많이 하더라고.
나는 태국에서 해봤을 때
너무 역하고 토할 것 같아서
그 이후로 안했지만,
한국에서 하면 뭔가
다를 것 같아서
다시 시도해봤지.
역시 기침 엄청 나오면서
석유맛 나!
내 스타일은 아니야.
그래서 신나게 T만 함.
그러면서 하는 말
"태국산이 더 좋네"
뭐 나한테는 둘 다
똥이지만.
우리는 클럽을 어디로 갈 건지
얘기를 나눴어.
T는 홍대에 클럽이
코쿤밖에 없는 줄 알더라.
태국 블로거가
코쿤만 올려놨기 때문에-_-;
나는 무조건적으로 코쿤이 아니라
홍대에 있는 많은 클럽이 있으니까
하나하나 알아보고 결정하자고 했어.
홍대클럽을 서칭해서
T에게 보여주며 소개했고,
T는 힙합클럽 NB2를
선택했어...
하필, NB2라니...
NB2는 주관적인 생각으로
홍대의 가장 알려진 힙합클럽이라는
네임벨류 때문에
순수하게 즐기러 오는 사람도 많지만,
클러빙을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도 많고,
기본적인 매너도 모른 채로
오직 부비기 위해 오는 좀비들
또한, 가득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클럽 구조가 굉장히 좁고,
사람들은 가득해서 엄청 더울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아찔했어.
그래서 다른 곳에 가자고,
거기가면 좀비들로부터
가드해야되서 내가
못 즐길 것 같다고 하니까
T는 그럴 필요없다고
그런거 신경쓰지말고 즐기라고 해서
옷을 갈아입고
NB2로 향했어.
불토라 그런지
40분 기다려서 겨우 입장했는데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어.
진정한 클러버도 있긴했지만,
대다수는 부비를 원하는
좀비들이었어.
T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나게 춤을 춰댔고,
나는 T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가드하며
춤도 못추고 고통받으며 있었어.
그러다가 문득
'나도 돈 내고 들어온 건데
왜 이러고 있지?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생각이 들어서
T 내버려두고
에어컨 쪽 명당에서
열심히 혼자 춤췄지.
그러다가 이따금씩 T를 봤어.
역시 남자들이 접근해서
말 걸더라고.
기특하게 잘 뿌리치더라.
아니, T가 뿌리친건지
말이 안 통해서 남자가 가버린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안심하며 놀기 시작했어.
근데 T가 울상지으면서
나한테 오는거야.
"T, 왜 그래? "
"누가 내 엉덩이 더듬거리고 튀었어..."
"것 봐라.
난 분명 말했고,
너는 괜찮을 거라면서?
재밌게 잘 노셈.
나도 혼자서 잘 놀거임"
나는 쿨한척 했지만,
매우 속상했어.
"아니,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어.
미안, 니 말 가볍게 여겨서..."
나는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타인에게 엉덩이를 허락한
T에게 화가 조금 났어.
"역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홍대 엔비에는 동남아 여자들이 많이 오는데,
내가 올 때마다 동남아 여자 그냥 냅두는
남자들을 못봤어.
그래서 내가 너한테
그렇게 조심하라고 한 거고,
결국 이것봐. 너도 속상하고 나도 속상하잖아!"
실제로 나는
한국남자가 동남아 여자 만지고 오겠다고
친구들과 낄낄거리면서 작당하고
아이컨택도 없이 뒤에서
무작정 가슴 만지는 경우도 봤음.
이런 남자가 대다수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외국 사람이 그런 일 겪는다면
한국인으로 정말 창피할 것 같아.
어쨌거나, 모처럼 한국클럽에 왔는데
T에게 안 좋은 기억을 심어준 채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다시 T를 가드했어.
그리고는
얘는 내꺼니까 건들지마라는 식으로
T의 허리를 감싸고
에어컨 앞 명당에서 같이 춤췄어.
그렇게 나는 끝끝내
가드만 신경쓰느라
즐기지 못했지.
클럽에서 나온 후
여전히 아까의 일을 불평하는 T
"앞으로 내가 말하면 그냥 믿어
니가 한국에 대해 뭘 안다고, 똥멍청아
집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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