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에 이어서 오늘은 

T와 T의 친구를 만나러 간 이야기야. 



그 대학교수라는 놈과의 약속이 파토나고

나는 약 기운에 헤롱거리는 몸을 이끌고 

BTS 아리역으로 가야만 했어.


택시를 불렀지만,

언제나처럼 택시기사는 우리 집을 못 찾아서

한 참을 헤매다 나에게 전화를 걸지.

그러면, 난 후다닥 아래층으로 달려가

세이프 가드에게 전화를 바꿔줘.

그러면 알아서 설명해줌.


님들도 혹시 콘도 빌리거나 할 때

택시기사가 길 못 찾으면

세이프 가드 아저씨한테 전화 바꿔주셈.

물론, 나 보다 복잡한 위치에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우열곡절 끝에 나는 택시를 탔고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 할 수 있었어.


T를 기다리면서 한 컷 찍어봤어.

이렇게 셀카를 찍으면서 기다리니까

T가 어느 새 내 옆에 와서 서있더라.


T는 몇 일 전부터 자기 친구인

메이와 함께 저녁먹자고 했기 때문에

오늘은 그 녀석과 같이 밥을 먹기로 했어.


다들 기억하려나 모르겠지만,

추석 때 T의 친구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어.

상당히 유쾌한 녀석임.

그리고 은근히 배려심도 있고.


파티에 가서 T가 나 혼자 외톨이 만들었을 때

유일하게 말 몇 번 걸어준 녀석이야.

그리고 태국어도 가르쳐줬는데

'텅 래우'라는 걸 T의 부모님 앞에서

말하면 좋다고 10번 정도 원어민 발음으로 연습시켰어.


그래서 텅 래우 텅 래우 외치고 다녔는데

그게 임신이라는 뜻이었어.

개 놈 시키.

그것도 모르고 T의 부모님 앞에서

임신 임신 이러고 다녔네.


그래서 이 녀석 만나면

"발씨놈 캅

해줘야겠다고 꼭 다짐했었지.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가 메이를 기다리기로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는 도착했어.

저 푸근한 인상 속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이 날은 메이가 T에게 떠레~ 라고 하면서

자꾸 나한테 떠레~ 떠레~ 해보라고 하는 거야.


무슨 뜻인지 설명을 안해줘서 궁금했어.

일단은 욕 같으니까 메모해서 외워났지.

외국어 배울 때 욕 먼저 배우는게 개꿀잼임. 

T가 그런거 배우지 말라고 하길래

악착같이 외워놈.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태국 욕 찾아보다가

떠레라는 걸 발견했어!


'돈에 환장한 허영심 많은 년'

이라는 욕이던데?


절친이라 그런지 아주 적합한 욕을 쓰더군.

요즘 들어, 나는 뼈 빠지게 일하는데

자꾸 한국 악세사리 보내는 걸 보아서

꼭 외워야하는 필수단어라고 생각함.


우리가 갔던 레스토랑은

아리 역 옆에 있는 펑키빌라에 위치한

본촌치킨이라는 곳이야.


한국의 교촌치킨의 짝퉁 버전이지.

가격이 무척 창렬한데,

인기는 많아.

아리지역이 나름 부자동네라 

갈 수 있는 사람이 많나봐.




우리는 간장 맛 닭다리 세트와 순두부 찌게를 시켰어.

신기하게 치킨 집에서 별걸 다 팔더라고?

찌게도 팔고, 떡볶이도 팔고

한식이란 한식은 다 파는 듯.

주인은 태국 사람이라던데 -0-


가격은 

1000바트(33,000원) 정도 나온 것 같아.

닭다리 세트에 순두부 찌게에 밥 세 공기랑

음료수 시켰을 뿐인데...


완전 비쌈. 차라리 한인 마트에서 고추장 사고

설탕이랑 케찹 섞어서 길거리 15바트(500원)짜리

닭다리 찍어먹는게 훨씬 싸겠다...


순두부 찌게는 한국에서 먹는 얼큰한 맛이 아니라

케찹 맛이 많이 나는 달달하고 이상한 맛이었어.

마치 일본에서 먹는 김치찌게의 맛처럼.


감기 걸려서 따듯하고, 얼큰한 국물이 

무척 먹고 싶었는데

한 입 떠먹고 숟갈 내려놓음.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펑키빌라 안에 있는 

마트에 들어갔어.


메이는 친구랑 자취하기 때문에

식료품을 사야한다고 했기 때문이지.

그러면서 아이스크림 하나 씩 사준다고

고르라고 하더라?


마땅히 먹을 게 없어서

그나마 가장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있는

M 이라고 적힌 아이스크림을 들었어.


그 순간, T와 메이녀석의 얼굴은 굳었어.


'뭐야? 내가 죄 지었어?

왜 그렇게 보는 거지?'


T와 메이는 태국어로 지들끼리

얘기하더라고.

메이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웃으며 괜찮다고 하는 거야.


T가 나에게 말했어.

"그거 되게 비싼 아이스크림이야"


"어? 설마했는데, 아이스크림 값 비싸서 그런 거였어?

됐어 됐어, 아이스크림 값이 하면 얼마나 한다고

이건 걍 내가 살게"


메이는 괜찮다고 빨리 넣으라고 해서

일단 넣었는데

바코드를 찍었을 때 보는 순간

'아 내가 실수했구나' 생각이 들더라.


50바트(1900원)짜리였어.

이게 맛있지만, 비싼 아이스크림

'매그넘'이라는 거였더라고.

우리나라 돈으로 얼마 안하지만,

쟤네 기준에서는 한 끼 식사만큼의

가격인데, 좀 미안하긴 하더라.


그래도 내가 밥 값 100바트 더 냈으니까

그냥 쿨하게 넘어갔어.

다음에 내가 매그넘 사주면 되지 뭐.

생각해보면, 카페에서 빙수 먹어도 

150바트 전후로 나오는걸 세 명이서 나눠먹는데

조그마한 아이스크림 딸랑 한 개에 50바트라니

후덜덜하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메이는 더 뜯겨선 안된다는 생각이었는지

똥이 마려웠던 건진 몰라도 후다닥 가버렸어.



"J, 모레 쯤에 우리 집 같이 가자."


"너네 집? 아리에 있는 콘도?"


"아니, 거기 말고, 돈무앙에 본가 있잖아.

거기 한 번 구경와라."


"귀찮음, 내가 거길 왜 감.

가봤자 너네 부모님 계셔서 불편한데

뭐하러 감"


"같이 가자!! 나 챙겨올 것도 있는데

혼자가기 심심해. 인사만 드리고 잠깐만 있다 오면 되잖아.

먼 거리도 아닌데~"


"너네 어머니가 자꾸 태국말로 

나한테 말 거는거 알잖아.

그 때마다 곤혹스러운데, 

니는 번역도 안해주잖아.

근데, 뭣하러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내가 거길 가야해?"


"이번엔 진짜 안 그럴게.

같이 가자"


"하... 대신 딱 2시간만 있다가 온다?"


"ok 콜!"


지네 집 자랑 엄청하고 싶은가 보다.

이 참에 얼마나 사는지 집안 호구조사 

한 번 들어가봐야겠다.


"그 대신 오늘 우리 집 오지말고,

너네 집에서 자. 나 몸 안 좋아서

혼자 편히 쉬고 싶어.

오늘 몸이 좀 아파서 나오기 싫었는데

약속 때문에 무리한거야.

내일 아침에 공복에 운동이나 같이하자.

수영복이나 챙겨오셈"


그리고 나는 집에 들어가서 편안하게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며 금요일 밤을 즐겼지.


다음 날,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도둑인가 싶어서 화들짝 놀라서 깼어.

알고보니 T가 문 따고 들어온거야.

잠 결에 빡치기도 해서 한 소리했어.


"내가 비록 너에게 키를 줬지만,

너 집인양 아무때나 벌컥벌컥 문 따고 들어오는게

매너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거면 키 다시 줘.

너가 여기 와서 쉬는 것도 괜찮고

오고싶을 때마다 오는 것도 괜찮은데

최소한 미리 연락은 하고

노크정도는 좀 해라.

여기 너 집 아니야~"


난 내 개인공간에 타인이 

허락없이 들어오는게 참 싫어.

커플이라 할 지라도

그건 사양이야. 


대학생 시절 자취할 때 대부분의 동기들이

공강시간에 친구 집 문들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와 맘대로 쉬곤 했는데

난 그거 굉장히 싫어해서

우리 집만은 아지트화가 안됐어.


다른 친구들 집 보면

좀 안쓰러웠던게

집 안도 개판되고

침대 위에 발 올리면서 눕고

더럽게 사는 내가봐도 좀 아니다 싶었어.


특히, 처음에 T가 샌들 신고온 때꾸정한 발로

우리 집을 걸어다니면서 내가 가장 소중히 아끼는

새하얀 침대에 발을 올리더라고.


진짜 그거 보고 경악했어.

남의 집에 오면, 최소한 발은 씻어야하는거 아니냐...

그래서 그거 보자마자 경질을 했지.


"어디다가 감히 추악한 병균 덩어리 발을 올리냐!

니 발 한 번봐라. 시꺼먼거 보여 안보여.

이건 탄게 아니라 때야, 때!


너 우리집 오면 발부터 씻어!

그것도 힘들면 의자에서만 얘기하자.

바닥정도는 내가 닦아줄 수 있는데,

침대는 아니야...


내 침대에 눕고싶으면 발은 닦고 와라 제발...

오해하지 마!

너가 싫어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그래!"


난 결벽증 환자도 아니고

솔직히, 깔끔한 편도 아니야.

친구들 사이에서 오히려 방구랑 트림 뿡뿡 껴대는

더러운 새끼로 통하지.


하지만, 남을 못 믿음.

내 몸에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것도 알지만

걔넨 믿을 수 있어.

근데, 다른 사람꺼는 못 믿겠단 말야!

집에서 씻고 왔다는 사람조차!


그래서 친구들이 말하길

더러운 건 니가 더 더러운데

왜 이렇게 남을 병균 덩어리로 보냐고 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지 뭐.


여튼, T가 집에와서 약속대로 공복의 유산소를

하러 갈라고 준비했지.


"T, 유 노우 코리안 몸빼바지 스타일?"


"그게 뭔데?"



"가자 수영하러!"


"너 이렇게 갈거야?"


"응, 이러고 갈건뎅? ㅇㅅㅇ"


"아, 나 안가"


"헐... 내가 쪽팔려?"


"내가 발 안닦았다고 뭐라할 때는 언제고,

너는 더 심한데?

완전 창피하다. 안가, 가지마"


"내가 설마 이러고 가겠냐,

너가 날 얼마나 어떻게 생각하는 지 잘 알겠다

나는 그냥 쇼윈도우 남친이지 뭐,

너의 주변사람들에게 보여주기용"


"피차일반이야.

그럼 발 안 닦는거로 뭐라 하지나 말던가-_-"


"응 니 발바닥, 원시인 발바닥

수영장 가기 전에도 

발바닥 씻고 들어가야하는 거 알지?

물 썩는당"


아침부터 티격태격하고

우리는 수영장으로 이동했지.


아침에 들어가니 조금 쌀쌀했는데

10분 만에 해가 쨍하고 뜨더니

물도 점점 미지근해졌어.


참 신기한 동네야.

해 한번 떴다고 훅 더워짐...


이 때는 수영장을 매일가는게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면서

나중에는 심심하고 지겹다라고 느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이런 사소한 것들이 

제일 먼저 생각나네.


나란 새끼, 간사한 새끼.


간사한 새끼는 간사하게

글 여기까지만 쓰고 물러남.

담 편에서 보장!


이 때 즈음에, 나는 태국친구가 무척 사귀고 싶어서

우리집 강아지 마냥 태국 사람만 보면

친구가 되고 싶어서 난리였어.


집 안에 맨날 박혀서 음악작업만 하다가

태국 여자친구인 T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게

너무 외로웠거든.

아니, 정신병 걸릴 것 같았어!


T랑 얘기하는거 제외하면 하루에 말 하는 횟수가

10번을 안 넘을걸?

대화 할 상대가 없으니까 미치겠는거야!


그래서 다양한 루트로 

친구를 구하고자 노력했어.


어플?

어플에는 무슨 마사지사만 있나

베이비 붐붐 마사지는 왜 자꾸 날려?!

일부로 남자랑만 얘기했더니

자기 게이라고 만나자고 하고있고...


콘도에서 만난 잘 웃어주는 터키 여자애는

몇 번 인사하고 친해져서 친구가 되나 싶었는데

대마 팔라고 접근한 거였고

방콕에서 정상적인 놈들은 어디서 만날 수 있는거야?


여튼, 이야기 흐름으로 다시 돌아가서

전 편에 이어 글을 쓸게.

전 날 그 동생녀석네 집에서

자고 일어나 그냥 가기 아까웠으므로

그 녀석이 자는 동안 신나게

부자들의 사는 콘도의 시설물을 이용해줬지.


그 녀석이 머물던 콘도는

넓은 수영장도 있었지만,

전 날 놀고 바로 왔던 터라

수영복이 없어서 헬스장 밖에 갈 수가 없었어.



역시 운동할 땐 나시지!

헬스장 No.1 패션이자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패션.

팔이라도 살짝 들었을 때 보이는 짜장범벅은

상대편의 안구를 강타 할 수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입냐고?

운동할 때 완전 편하거든!


또 다른 이유로는 헬스하는 남자들 99%는

거울을 보며 펌핑 된 자기 근육을

3초이상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데

나시를 입으면 그 효과가 더 극대화 되기 때문이야.


하지만, 태국 애들은 나시를 입은 남자를 볼 때는

게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걔네들은 나시를 잘 안 입어.


그렇다면, 태국 로컬 패션은 뭐냐?!

축구 유니폼이야.

얘네는 평상복, 작업복, 잠옷으로

축구 유니폼을 입기로 암묵적으로 약속한 것 같아.

언제 어디서나 축구유니폼을 입고

쪼리를 질질 끌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지.


개인적으로 요즘 중국 애들이 갈 수록

멋져지고 이뻐져서 한국인과 구분이 잘 안가는 것 같아.

태국에서 나시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돌아다니는 동양인은 대개 한국인 아니면 중국인인데,


주관적 경험으로 봤을 때

좀 더 패셔너블하면 한국인이고,

앞에 복대 차면 중국인임.


헬스를 마치고, 그 동생녀을 깨워 아침겸 점심을

먹기위해 라마9 센트럴플라자로 이동했지.

센트럴플라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쇼핑센터인데,

시암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으며

있을 건 다 있는 곳이야.


특히나, 음식점이 밀집되어 있는데

가격 대비 퀄리티가 짱짱맨임.

우리는 제일 흔한 무한리필 가게인

Bar-B-Q Plaza로 갔지!


평일 낮 시간이어서

웨이팅은 없었어.

주말에 가면 최소 10분은 기다려야함.



"몇 분이냐 캅?"


"응? 몇 명이냐고?

둘인데요?"


"#$^!$%카드 캅?"


"예? 카드 계산이냐고요?

야 계산 먼저해야 되나봐?

여기요. 여기 현금이요."


"노노노캅, !#$^#캅"


"뭐라는 거여?

우리 못 먹어요?

배고프다, 헝그리, 히우래우? you know?"


말이 안 통하자 직원은

영어가 되는 직원을 불러와서

설명해줬어.



사실 여기는 회원제로 운영하나봐.

이용하려면 멤버카드가 필요하데.

T와 함께 갔을 때는 아무 생각없이 가서

그냥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난감했어.


"아... 여기 멤버카드 만들라면

돈 들겠지? 나가자, 다른 데 가서 먹장."


"아!!!! 기다려라 캅!

꽁짜다 캅!!!!!"


"ㅇㅋ 진작 말해주지!

사람 없어보이게!!"


멤버쉽 카드 발급은 공짜니까

님들도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하나 만들어달라고 하셈!



드디어 식탁에 앉았고,

태국 전용 그릇이 나왔어.

샤브샤브와 고기구이를 동시에 먹을 수 있는 그릇이라

그럴 싸 해보이긴 하지만

사실상 실용성은 제로야.


고기는 겉만 타고 속은 안익고,

판을 갈 수도 없어서

그냥 전부 다 물에 빠트려서 익혀먹었어.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그 동생녀석은 랑짓에서 썸을 탄 여자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태국어 공부를 시작했어.

아까 식당 뿐 만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 내가 앞으로

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태국에서 지내는 동안

태국친구도 생기고, 태국에서의 삶이 윤택해지겠지?


T는 태국어 학원에 다닐 것을 강요했는데

그건 돈 지랄이라고 생각했어.

가나다라도 모르는 애를

학원 다닌다고 뭐 많이 배워오겠음?


암기나 시킬텐데,

그럴 바에야 혼자 암기하고 

그 후에 학원 다니는게 더 효율적이지!


대부분 사람들이 대화문을 외우면서

외국어를 배우는게 빠르다고 해.

하지만, 나는 조금 달랐어.

그렇게 공부하면, 그 상황 외에는

내가 쓰고 싶은 말을 못하잖아!


그래서 중요한 동사와 명사를 

먼저 외우자고 생각했고

왠만큼 외워진 후에

내가 문장 자체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내 고집을 밀고 나갔어.


처음엔 더듬더듬 거리면서 엄청 힘들었는데,

이 공부스타일이 나랑 잘 맞았는지

효과는 좋았어!

1개월 정도 지나니까 내가 단어랑 명사를 조합해서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더라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언제나처럼 

10분여만에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에어컨을 틀고 자버린거야.


냉동식품 될 뻔...

항상 에어컨을 18도로 설정해놓거든...

잠에서 깨니, 너무 추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열이 나더라.


아플 땐, 기름진 것 말고

죽을 먹어야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라서

편의점에 가서 새우완자탕 샀어.

여기에 프로모션으로 반숙 같이 주더라고?


어떻게 먹어야하나 고민했는데

계란 있는거보고 엄청 뜨겁게 데워줘서

무리없이 잘 먹게 되었어.

계란이 살짝 익은 다음에 먹어도 맛있고

풀어먹어도 맛있어!

가격은?! 55바트(1800원)정도 했는데,

국물도 시원하고, 완자도 제대로라

그렇게 창렬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았지.


편의점에 갔을 때, 나랑 친한 편의점 매니져

'닝'이라는 누나가 있었는데

이 누나가 영어를 못해.


그래서 감기약을 뭐라 설명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그래서 몸이 아픈 와중에도

어깨 부여잡고 오들오들 떠는 마임쇼를 펼쳤지.

무슨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편의점 직원들 다 모여서 퀴즈 프로그램 진행하듯

자기가 맞출 차례라고 서로 대답했어.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지...


닝 누나와는 친구라면 친구지만,

편의점에 갔을 때를 제외하면 마주칠 일도 없고

라인을 따서 메세지를 주고 받은 것도 아니어서

그냥 내겐 한국을 좋아하는 편의점 누나 정도 였어.


괜히, 라인 같은 거 물어봐서

오해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열심히 몸으로 설명 한 후에, 

닝 누나가 약 하나를 가져다 줬어.

다행히 영어로 써져있더라고?


음... 뭔진 잘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 배운 fever라는 단어를 보아하니

열 날 때 먹는 약이구만?


아무튼 맞는 것 같아서 이거 먹고 다시 좀 잤어.

이번에는 에어컨 안 틀고 문 열고 잤는데

밖에서 첨벙 첨벙 꺄르르 꺄르르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몸이 직감적으로 날 깨우게했지.

'여자다. 인마 일어나.

여자 소리가 난다.

너도 지금 안 일어나면 굉장히 아쉬울 거 알잖아.

정상적인 태국 여자들과 친구가 될 기회다.

어서 일어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자 소리가 난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베란다로 가서

기지개를 켜며 수영장에 있는 사람을 봤어.

수영장 안 여자 둘, 혼자 멋쩍어서 벤치에서

똥 폼 잡고 있는 남자 하나.


'어... 흠... 말을 섞어볼 좋은 기회군.

아니아니지... 외웠던 태국어를 

복습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군.'


사실 태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었어.

남자든, 여자든, 게이든, 레이디 보이든, 톰보이든, 레즈든

상관 없으니 아무 태국인이랑 친구가 되고 싶었지.


그래서 일단, 수영복 입고 뛰쳐나감.

그리고 후리한 외국인 버프를 이용해서

친근한척 말을 걸었지.


"안녕? 난 J야."


"난 000야, 얘는 내 회사동료 00000야.

한국인이야?"


"응, 사실 자다가 너네 떠드는 소리에 깨서 나왔어."


"아 진짜?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아냐! 재밌어보여서 나도 내려온거야.

사실 친구가 없거든.

친구는 고사하고 말 할 사람도 없어

맨날 집에 혼자 있어서 심심해서 온거야."


"우리 이뻐서 온 거 아니야?"


"개소리 ㄴㄴ해, 

너 지금 화장 흘러내리는데

이뻐보이겠냐, 운동이나 같이하자.

살 빼려고 수영하는 거 아님?"


"쳇, 맞아, 뭐 어떻게 하게?

여기 굉장히 좁아서~"


"내가 지켜보니까 너네 그렇게 운동해서

살 안빠질 듯 해.

살 빼려면 내기가 짱이야.

내기하자. 


내가 왕복 10번 찍을 때 너네는 합심해서

5번만 찍으면 돼.

먼저 온 사람이 이기는 거임"


"지면 뭔데?"


"손가락으로 팔목 때리기!"


"콜!"


그렇게 처음 보는 여자애들과

맴매를 걸고, 내기를 하게 되었지.

그 동안, 혼자 똥 폼 잡는 남자애는

얼굴은 핸드폰을, 눈알은 우리를 향해 있었어.

부러웠나봐.


게임은 시작됬고, 

임용고시 실기 대비로 연습할 때 하던 수영실력으로

숨 한 번 안쉬고 팔을 미칠듯이 저었지.


결과는?


내가 졌어.

숨쉴 때마다 흘깃 봤는데

눈알 뒤집어 까고, 침 흘리면서 

걔네들도 죽기 살기로 하더라.


"야, 이거 어떻게 때리는 거야?"


"손가락 두 개로 내 팔목을 치면 돼."


"아? 이렇게?"


"아 발씨!! 주먹으로 내려치면 어떡해!"


"처음이라 잘 몰랐어^^"


독한 것들...

그렇게 하하호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멀리 벤치에서 폼 잡고 있는 남자애는 그게 부러웠는지

물 속으로 퐁당 빠져서 헤엄치는 시늉 몇 번 하더니

쿨한 척 내게 말 걸더라.


"오~ 안녕?

너 수영 되게 잘하더라?"


"아! 고맙다캅!!"


"나는 0000이야. 현재 대학교수야"


"어?! 너 되게 젊은데?

몇 살이여?"


"28살."


"헐 대박, 나보다 1살 많은데?

(태국은 만나이로 취급)

어디 대학교?"


"줄라롱꼰"


대박 명문대학교다...

여자 애들도 이 얘기를 듣더니 흘깃 귀를 귀울였어.

그 남자애는 그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이 때다 싶어 밀고 나가더라고.


"얘들아, 우리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맥주라도 한 잔 할까?"


"헤에? 어디서 먹게?"


"집 앞에 괜찮은 곳 있어.

거기서 먹자"


"아니야, 우리는 내일 일해야해서

가봐야해. 다음에 보자~"


남자녀석은 이내 실망했고,

여자 애들이 간 후로 몇 분간 둥둥 떠다니다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J, 클럽 좋아해?"

"응, 좋아하지!"

"클럽이나 갈래?"

"오늘? 오늘은 안돼~

여자친구 만나기로 했어"


"그럼 가볍게 맥주나 먹자"

"콜"

"라인 알려줘, 샤워하고 메세지 보낼게"





그렇게 T를 만나기 전에

약속이 생겨버렸어.

사실 피곤하고 아프고 그래서

먹기 싫었는데, 그래도 태국인 친구가 생긴다는 생각에

가기 싫어도 한 번만 참자라고 벤치에 누워 생각했지.


그리고 집으로 들어가 샤워 후 

그 녀석의 메세지를 기다렸는데

미안하다면서 다음에 먹자고

연락이 오더라고.


다행이었어.

정말 귀찮았거든.

그리고 그 녀석도 그냥 

가볍게 한 말 일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어.

마치 우리나라의 '언제 밥 한 번 먹자'와 같이.


이 녀석과 그 이후로 몇 번 마주치고 연락을 했지만,

결코 클럽은 같이 가거나, 식사를 하는 일 따위는 없었어.

약속을 잡아도 이 녀석이 일방적으로 펑크냈거든.


나중에는 좀 화가 났는데,

이런게 태국 사람들의 흔한 약속과 시간의 개념인가?

생각하고, 태국 사람들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가졌었는데

그 녀석만 그런 거였어.

나쁜 시키.


그 여자 애들은?

엘리베이터 타면서 몇 번 마주쳤는데

화장한 얼굴을 몰라봐서

인사 안하다가 그냥 그렇게 됐지 뭐.


지금에야 Z형의 소개로 치앙마이에

친한 친구가 생겼지만,

이 때는 정말 외로웠어.

다시 방콕으로 간다해도

친구를 사귈 수 있을 지 걱정이야.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 편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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